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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의 강점은 ''정보 검색력'' 손품 들여 다양한 경험 쌓게 해"

"워킹맘의 강점은 ''정보 검색력'' 손품 들여 다양한 경험 쌓게 해"
조선일보  기사전송 2009-01-19 03:45 | 최종수정 2009-01-19 10:20 
두 자녀 서울대·명덕외고 보낸 워킹맘 임태연씨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 버려야 당당한 교육 가능" 대학원 병행… 전과목 A 성적표로 ''긍정적 자극''

회사일에 집안살림, 자녀교육까지 워킹맘들은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고민은 바로 자녀교육. 엄마의 뒷받침이 아이의 대학 간판을 결정한다는 말이 나오는 요즘, 워킹맘들은 스스로 죄인이 된 듯한 기분까지 느낀다. 하지만 선배 워킹맘인 임태연(46·서울 목동·교육공무원)씨는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마음을 버려라"며 "엄마가 당당해져야 자녀교육도 성공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20년간 직장생활을 하며 두 아이를 각각 서울대와 외고에 보낸 임씨의 교육 노하우를 들어봤다.


아이에 맞는 학원 골라 꾸준히 보내

임씨는 먼저 독서교육에 가장 신경을 썼다. 1~2주에 한 번씩 함께 서점에 가서 보고 싶은 책을 고르게 했다. 아이들이 읽는 책은 임씨도 반드시 읽고, 같이 이야기를 나눴다. 그 외에는 영어와 피아노, 수영만 가르쳤을 뿐 다른 것은 학습지조차 시켜본 적이 없다. 대신 체험학습지를 많이 다녔다. 주말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산이나 들로 나가거나 동물원, 미술관 등을 찾았다.

또 사소한 습관이지만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말을 쓰도록 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이거 먹으면 안 돼?"라고 물으면 "이거 먹어도 돼?"라고 고쳐 말하게 한 뒤 대답했다. 평소 어떤 말을 쓰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마음가짐도 달라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든 "너는 할 수 있어!"라는 말로 격려하고 자신감을 북돋아줬다.

워킹맘인 임씨는 엄마들 모임에 참석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교육정보도 부족했다. 큰아이를 키우면서 엄마 모임의 필요성을 느끼고, 작은아이가 초등학생일 때 처음으로 모임에 참석했다. 낮에 열리는 모임이라도 점심시간을 쪼개 열심히 나가 이야기를 들었다. 워킹맘이 많아진 요즘은 저녁에 모이는 경우가 많아져 참석하기 편해졌다.

"한 번은 엄마들이 초등학교 단원평가 이야기를 했어요. 저는 그런 시험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죠. 단원평가를 준비하려면 어떤 문제집을 봐야 하고, 학원은 어디가 좋은지 등 이야기가 나오는데 입이 딱 벌어지더라고요. 그런데 가만히 듣고 있자니 자꾸 귀가 솔깃해졌어요. 자칫하면 제가 교육정보에 막 휘둘릴 것 같아서 제 나름의 교육정보를 찾고, 교육관을 명확하게 세워야겠다고 생각했죠."

아이들이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처음 보습학원에 보냈다. 이과계열인 큰아이는 수학과 영어, 외고 지망생인 작은아이는 종합학원에 보냈다. 학원을 고르는 기준은 딱 하나, '아이와 잘 맞는가'를 봤다. 유명세를 보고 선택했다가도 잘 맞지 않는 것 같으면 과감히 옮겼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뒤 아이에게 꼭 맞는 학원을 찾으면, 꼬박 3년 이상을 다니게 했다. 그동안 학원에 보내지 않다가 보낸 덕분인지 아이들은 배운 내용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초등학교 때 중상 정도이던 성적이 중학교에 들어간 이후 상위권으로 껑충 뛰었다. 두 아이들의 성적이 좋아질수록 주변 엄마들의 질문도 늘었다.

"어느 학원에 보내느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아요. 그러면 저는 공부 잘하는 애가 다니는 학원보다 아이에게 맞는 학원을 고르라고 답해요. 학원을 자꾸 옮기면 아이는 학원에 적응하느라 힘만 들뿐 제대로 공부할 수 없어요."


워킹맘의 장점 최대한 활용하라

임씨가 꼽는 워킹맘의 최고 강점은 '정보 검색력'이다. "'발품' 팔 시간이 없으니 '손품'을 많이 팔았다"고 했다. 그 덕분에 작은아이는 30%의 비용만 들이고 몽골, 호주, 중국 등에 다녀왔다. 서울시청, 양천구청, 청소년 문화교류센터, 청소년 자원봉사센터 등 여러 기관의 홈페이지에서 정보를 얻었다. 몽골은 사랑의 집짓기 봉사활동으로 다녀왔고, 호주는 양천구청이 호주 도시와 자매결연 맺은 기념으로 마련한 청소년 교류 프로그램에 선발돼 다녀왔다. 임씨는 "엄마가 조금만 신경 써서 정보를 수집하면 적은 비용으로도 다양한 경험을 쌓아줄 수 있다"고 전했다.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할 때는 대부분 자기소개서가 필요하다. 임씨는 아이들에게 자기소개서를 미리 써놓게 한 뒤, 좋은 프로그램이 있으면 아이들에게 알려줘 스스로 지원하게 했다. 하나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그 내용도 자기소개서에 포함시켰다. "소개서, 사진, 자격증, 이력 등을 미리 작성해 두면 마감이 촉박한 프로그램이라도 빨리 지원할 수 있고, 면접 준비도 더 잘할 수 있어 선발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했다.

학교공부와 관련 없는 활동이라도 아이들이 관심있다면 얼마든지 참여하게 했다. 작은아이는 학급임원은 물론 교내 관현악부 등 다양한 활동을 했고, 외고 시험 전날 학교 피구대회에 참여할 정도로 학교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큰아이는 고3 때 3박4일간 장애아복지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임씨는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알리는 학교공문을 본 아이가 관심 있어 해 참여를 권했다"며 "시간 때우기가 아니라 아이가 원하는 것을 하는 만큼 더 보람을 느끼고 알찬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임씨는 후배 워킹맘들에게 "아이들에게 미안해하지 말고 당당해지라"며 "자녀교육에 올인하기 보다 자신의 생활을 찾으라"고 권한다. 그녀는 아이들이 고1, 중1에 올라갈 때 대학원에 진학했다. 아이들 교육은 어쩌느냐며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지만, 뜻을 굽히지 않았다. 아이들이 학원에 가 있는 동안 대학원 수업을 들었고, 끝나면 학원에 들러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직장, 집안일, 자녀교육, 대학원 공부를 병행하면서 최선을 다했다. 오는 2월, 학점 4.3 만점의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원을 졸업할 예정이다.

"두 아이가 고1, 중1로 중요한 시기인 만큼 처음에는 걱정도 많았어요. 하지만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제 모습에 아이들도 자극을 받는 등 긍정적인 영향을 줬어요. 무엇보다 '전 과목 A' 성적표를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스스로 더욱 당당해질 수 있었죠."


엄태연씨의 워킹맘 교육 노하우

1 하교 후 전화로 다음날 준비물을 엄마에게 알려주는 습관을 들인다. 워킹맘들은 밤늦게 퇴근했다가 당장 다음날 아침에 가져가야 하는 준비물 때문에 당황하곤 한다. 미리 알고 퇴근길에 사가거나 아이 스스로 준비하게 하면 한결 수월하다.

2 최소한 아이가 무엇을 배우는지 정도는 파악해 두자. 새 학기 교과서 내용을 미리 흝어보고, 참고서나 문제집도 서점에 가서 같이 구입한다. 엄마가 직접 가르칠수 없더라도 어떤 문제가 출제되고 , 아이가 무엇을 어려워하는지 알아두는것도 도움이 된다.

3 학교와 담임선생님을 믿어라. 이메일과 문자메시지를 적극활용해 선생님과 소통하며 아이의 학교생활을 파악해 두자.

4 인터넷을 적극 활용하자. 좋은 교육정보를 발견하면 언제든 필요할 때 다시 확인할 수 있도록 다이어리에 적거나 USB메모리에 저장해 둔다. 교육청,시청,구청, 학교 홈페이지등은 필수 코스 요즘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으로 아이의 성적과 학교생활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오선영 맛있는공부 기자 syoh@chosun.com]

by 해피걸 | 2009/01/19 13:05 | 기타 | 트랙백 | 덧글(0)
[피겨 인사이드] 김연아, 어머니의 이름으로 거듭난 스케이터

엑스포츠뉴스  기사전송 2008-10-30 08:01 



김연아를 완성시킨 사람들 - 어머니 박미희 씨 편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한국 어머니들이 자식에게 쏟는 관심과 투자는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자신의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식에게 헌신하는 모습은 서구인들의 시선에는 낯선 모습으로 여겨집니다. 한편으로는 자식의 삶에 너무나 개입이 많은 태도에 비판이 따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극성 어머니'라 할지라도 자식의 재능과 방향을 올곧이 잡아주고 인생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준다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피겨 여왕' 김연아(18, 군포 수리고)를 얘기할 때,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어머니인 박미희 씨에 대한 부분입니다. 어릴 적부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김연아였지만 박 씨의 올바른 방침이 없었더라면 결코, 오늘날의 김연아가 탄생할 수 없었습니다.

김연아가 처음으로 스케이트를 신고 나서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그림자처럼 동고동락했던 박미희씨는 김연아의 가장 가까운 코치이자 매니저이며 인생 상담자이기도 합니다.

부모의 욕심이 아닌, 딸의 재능을 보고 이끌어준 피겨의 길
어릴 적부터 스케이트를 마냥 좋아하고 피겨스케이팅을 TV를 보면서 동경한 박 씨는 가족들이 살고 있던 군포시에서 가까운 과천시에 아이스링크가 생기면서 두 딸에게 그곳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처음에 스케이트를 신고 빙판에 섰을 때, 두 딸은 모두 흥미를 가졌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빙판에 녹아들던 쪽은 차녀인 김연아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에 김연아가 피겨에 남다른 재능이 있고 본격적인 선수의 길로 들어설 것을 권유한 코치의 말에 박 씨는 흥분하게 되었습니다.

그저 취미로 시켜보려고 했던 피겨스케이팅에 김연아가 비범한 재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밀어줄 생각을 가지게 되지만 코치와의 의견 충돌을 일으킨 박 씨는 한창 연습에 몰두하던 어린 김연아를 데리고 빙상장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러나 피겨스케이팅 비디오를 계속 틀어보면서 동작을 따라하는 김연아의 모습에 딸이 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어머니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재능도 있는 데에다 진정으로 피겨를 하고픈 꿈을 가진 어린 딸의 의지를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 박 씨는 김연아에게 피겨선수로서의 길을 열어주게 됩니다.

피겨에 대해 동경심과 관심이 컸던 것은 사실이지만 근본적으로 김연아가 피겨의 길에 들어선 이유는 본인의 의지와 재능 때문이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빙판 위에서 점프를 하고 연기를 하고 싶어 했던 김연아의 의지를 박 씨는 활짝 열어주었습니다.

그러나 단지 길만 열어준 것이 아닌, 어린 딸이 걸어가야 할 험난한 세상에 다리가 되기로 박 씨는 결심하게 됩니다. 본인의 생활을 모두 접고 본격적인 '피겨 맘'의 길로 들어선 박 씨의 앞길엔 창창한 고속도로보다 험준한 산맥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땀과 눈물로 얼려진 빙판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 '테니스 스타' 마리아 샤라포바, 그리고 한국 골프의 황금기를 연 박세리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진출한 박지성 등은 모두 아버지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힘입어 성장한 선수들입니다.

스포츠 선수들은 어릴 적부터 타고난 재능을 적절하게 살리고 올바른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는 부모님들의 조력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다른 종목에 비해 피겨스케이팅은 부모의 조력정도가 아닌 '헌신적인 희생'이 필요한 종목입니다.

물론, 매일 부모가 따라다니지 않고 홀로 모든 것을 해내는 피겨선수들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매우 어릴 적부터 이루어지는 고된 훈련과 체계적인 선수 육성이 필요한 피겨를 생각할 때, 세상물정을 전혀 모르는 어린 선수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줄 부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피겨스케이팅은 합숙훈련이 이루어지지 않는 철저한 ‘개인 종목’이기 때문에 훈련 이외의 다른 부분을 코치에게 전담시킬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전용링크장이 없는 국내의 현실로 인해 늦은 밤까지 링크장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훈련을 소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린 선수들이 이른 아침과 늦은 밤에 이곳저곳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점과 스케이트를 비롯해 여행용 가방을 가득 채우는 막대한 장비들을 대동해야 한다는 점은 실로 어렵습니다. 이런 점을 생각할 때, 어린 선수들이 홀로 움직이기가 어려운 종목이 피겨스케이팅이고 옆에서 항상 선수를 도와주는 조력자가 필요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피겨 맘'이 된다는 것은 선수의 매니저가 된다는 뜻이고 자신의 삶을 상당부분 포기해야합니다. 부모의 게으름으로 딸의 재능에 타격을 주기 싫었던 박 씨는 김연아의 매니저를 자청했으며 단순히 뒷바라지를 하는 입장에서 벗어나 코치의 역할까지 수행하게 됐습니다.

워낙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김연아는 출전하는 모든 대회를 휩쓸면서 '피겨 천재'로서 큰 주목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김연아도 피겨스케이팅을 그만둘 뻔했던 큰 고비가 두 차례 있었습니다.

피겨스케이팅은 다른 종목들에 비해 지출이 많고 수입이 적은 대표적인 종목입니다. 그리고 선수생명도 상당히 짧습니다. '가늘고 긴 것'이 아닌, '굵고 짧은 것'을 해보겠다는 큰 다짐이 없다면 쉽게 들어설 수 없는 곳이 바로 피겨의 무대입니다.

김연아의 가족 형편은 그리 풍족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근근이 선수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금융위기가 불어 닥치고 그 여파가 사라지지 않았던 시기에 소규모의 사업을 하고 있던 아버지 김현석 씨가 운영하던 회사는 어려운 형편에 놓이게 됐습니다.

김연아가 선수생활을 하는데 유일한 지원처가 끊길 위기에 놓이게 되자 박 씨의 눈앞은 캄캄해졌습니다. 게다가 그 시기에 김연아는 사춘기에 접어들고 있어서 사소한 일로도 어머니와 잦은 충돌을 빚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신뢰와 피겨를 하고픈 마음은 간절했지만 감정의 기복이 일정치 못했던 그 시기에 김연아는 선수생활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을 잃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침부터 훈련이 끝나는 귀가 시간까지 내내 딸과 전쟁을 치러야했던 박 씨도 기진맥진해졌습니다.

모녀의 관계가 이리 어수선할 때, 피겨를 할 수 있는 자금줄마저 끊어졌으니 도저히 앞날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해 벌어진 동계체전을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접을 것으로 합의를 본 김연아와 박 씨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참가했지만 그 대회에서 트리플 점프 다섯 가지를 모두 성공시키며 우승하자 두 모녀의 마음은 다시 바뀌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김연아의 재능을 아깝게 여긴 코치의 권유와 주변사람들의 도움으로 김연아는 다시 스케이트의 끈을 잡아 맬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김연아를 지도한 신혜숙 코치는 사춘기를 겪는 선수들의 모습을 수차례 지켜본 경험에 대해 "그 시기에 접어들면 머릿속으로는 하기 싫다는 마음이 강한데 막상 피겨 말고 다른 것을 하기가 어려우니 몸은 빙상장에 오게 된다. 집에서 놀 수도 없어서 피겨를 타지만 하고픈 마음이 없는데 훈련이 제대로 될 수가 없다. 피겨선수에게 이 시기는 큰 고비이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김연아가 또 한 번 스케이트를 벗을 뻔했던 큰 위기상황이 있었습니다. 바로 피겨선수들에겐 ‘생명’과도 같은 스케이트가 말썽을 일으킨 것입니다.

2006년은 김연아와 박 씨에겐 뜻 깊은 한해였습니다. 바로 그해에 열렸던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일본의 자랑인 아사다 마오를 물리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기 때문입니다. 한국피겨역사상 최고의 쾌거에 매스컴은 흥분했으며 장기적으로 김연아를 지원해 시니어 대회에서도 우승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소리만 떠들썩했을 뿐 실질적으로 김연아에게 이루어지는 투자와 지원은 전무 했었습니다. 주니어대회에서 마오를 꺾고 1위에 오른 쾌거는 축복으로 다가오지 못했습니다. 피겨선수에게 가장 기본적으로 공급되어야 할 스케이트가 말썽을 일으키면서 김연아는 선수생활 이후 최고의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가뜩이나 고질적인 발목 인대부상과 고관절부상으로 신음했지만 부상은 정신력과 극약의 처방으로 최소의 해결점은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탈 때마다 무너지는 스케이트는 도저히 해결점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국내에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을 위한 전문적인 스케이트를 제작하는 업체가 없었거니와 일본의 스케이트 장인을 찾아가서 김연아의 발에 꼭 맞는 스케이트를 맞추고 3개월을 기다렸지만 도착한 부츠는 허망하게도 김연아의 발과 맞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기량이 뛰어나도 스케이트에 문제가 생긴다면 피겨선수의 생명줄은 사라지게 됩니다. 이 문제에서 해결점을 찾지 못한 박 씨는 가족회의를 통해 김연아를 은퇴시키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대한빙상연맹에 전화로 무거운 목소리를 털어놓았습니다.

"..... 부회장님, 이제 도저히 못하겠어요..... 연아를 은퇴시켜야할 것 같아요..."

대한방상연맹의 이치상 부회장이 듣는 수화기 저편에서는 박 씨가 오열하면서 간신히 말문을 열고 있었습니다.

척박한 국내피겨의 환경 속에서 어떤 힘든 상황이 몰려와도 박 씨는 약한 모습을 노출하지 않았습니다. 도저히 넘기 힘든 벽이 있어도 분명히 출구를 찾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험난한 길을 걸어왔지만 스케이트문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후에 피겨를 하면서 느낀 고충을 털어놓을 때에도 박 씨는 스케이트 문제를 항상 언급했었습니다. 그리고 이 부분을 회고할 때에는 그토록 강했던 어머니가 눈물을 참지 못했었습니다.

각종 부상으로 인한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끝까지 피겨에 대한 의지를 버리지 않았던 김연아는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이때의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빙상연맹의 이 부회장은 부랴부랴 김연아의 집을 방문했고 박 씨는 그동안 한국에서 피겨를 하면서 느낀 고충들을 구구절절이 털어놓았습니다.

결국, 스케이트 문제에 대한 여러 가지 해결책을 제시해 김연아와 박 씨는 마음을 돌리게 되었고 2007 세계선수권대회 때, 마케팅에 참가한 한 회사에서 김연아에게 알맞은 부츠를 제공해주면서 지긋지긋했던 스케이트 문제가 해결점을 찾았습니다.

만약, 스케이트 문제로 세계최고의 선수를 잃었다면 한국빙상스포츠 역사상 최악의 오류로 기록됐을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두 가지 문제가 김연아의 선수생활을 가로막는 가장 큰 사건들이었지만 열악한 국내 피겨 환경 속에서 꿋꿋이 버티면서 지금까지 걸어온 빙판은 김연아가 흘린 땀과 어머니인 박 씨가 흘린 눈물들이 얼려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부상방지를 대비해왔지만 피겨선수들에게 찾아오는 고질적인 부상은 김연아도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트리플 점프를 시도하는 선수들 치고 부상을 당하지 않는다면 이상할 만큼, 부상이 필수적으로 따르는 종목이 바로 피겨스케이팅입니다.

박 씨는 몸을 움직이고 점프를 할 때마다 치명적인 통증을 느끼는 딸을 계속해서 빙판으로 내보냈었습니다. 강해야만 살 수 있는 스포츠의 무대를 생각할 때, 딸 앞에서 약한 모습을 노출할 수 없었지만 그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부모의 심경은 자연적으로 밀려왔습니다.



내 아이는 최고의 위치에 있지만 내 딸만이 소중한 게 아니다

국내피겨 훈련이 이루어지는 현장들을 돌아보면서 많은 유망주들이 최고의 우상으로 김연아를 손꼽고 있듯, 대부분의 피겨 맘들도 박미희 씨를 존경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캐나다 토론토 현지에서 김연아를 돌보는 데에도 바쁜 와중이지만 국내 유망선수들에게도 신경을 쓰며 김연아를 통해 얻은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있다고 합니다.

박 씨는 최고의 선수를 가진 부모로서 내 아이만 챙기는 것이 아닌, 앞으로 성장할 유망주들을 위해 꾸준히 신경을 쓰는 조력자가 되고 있습니다. 또한, 김연아가 밟았던 그릇된 길을 후배 선수들이 피해갈 수 있도록 알려주는 것에도 책임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부분에 있어서 철두철미하고 빈틈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박 씨는 당차고 기가 센 김연아를 유일하게 컨트롤할 수 있는 인물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김연아와 박 씨는 단순한 모녀관계를 넘어서 힘들 때, 기댈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인생의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또한, 같은 꿈을 향해 매진해가는 둘도 없는 협력자가 되었습니다.

박 씨를 가까이서 본 어느 유망주 선수의 어머니는 빙판 안에서는 강하게 보이지만 실생활에서는 평범하고 인간적인 모습이 많이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김연아는 자신의 비범한 재능을 피나는 노력으로 승화시켰고 그 날개를 달아준 국내의 훌륭한 코치진이 있었기에 기본기가 철저한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세계적인 선수로 거듭나고자 가장 궁합이 잘 맞는 코치인 브라이언 오서와 안무가 데이비드 윌슨을 만나 피겨선수로서 최상의 실력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바탕을 이룰 수 있도록 모든 것은 헌신한 어머니인 박미희 씨의 공로는 오늘날의 김연아를 완성시키는데 최고의 공헌을 했습니다. 헌신적인 부모와 인생의 친구, 그리고 매니저와 코치가 되기도 하는 모정의 힘이 얼마나 큰 지를 박미희 씨는 김연아를 통해 여실히 증명해냈습니다.

[사진 = 김연아 (C) 장준영 기자, 김성배 프리랜서]
엑스포츠뉴스 조영준 기자

by 해피걸 | 2008/10/30 11:33 | 이시대의 명인 | 트랙백 | 덧글(0)
김연아를 완성시킨 사람들 - 지도자편

[피겨 인사이드] 김연아를 완성시킨 사람들 - 지도자 편
엑스포츠뉴스  기사전송 2008-10-29 07:37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2008 피겨스케이팅 시니어 시즌의 포문을 여는 그랑프리 1차대회인 'Skate America'에서 193.45점이란 고득점으로 2위와 20점차의 간격을 보이며 압도적인 우승을 차지한 김연아(18, 군포 수리고)에 대한 흥분이 아직도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Skate America는 6차에 걸친 그랑프리 시리즈들 중, 가장 쟁쟁한 선수들이 총출동한 대회였습니다.

미래에 시니어 정상권에 도전할 유망주들인 미국의 신예 미라이 나가수(15세)와 주니어 선수권대회 우승자인 레이첼 플렛(16세)이 참가했고 아사다 마오(18)와 함께 일본 피겨스케이팅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안도 미키(21세)와 나카노 유카리(23세)등이 참가했기 때문입니다.

세계랭킹 1위부터 3위까지의 선수들이 모두 서로 맞부딪히지 않고 배분된 것이 그랑프리 시리즈의 특징입니다. 그 가운데에서 1위부터 3위의 선수들이 다른 경쟁자들과 얼마나 점수 차를 보이며 우승하는지의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가장 쟁쟁한 선수들이 맞붙은 1차시리즈 Skate America에서 20점차의 압도적인 우승을 차지한 김연아의 모습에 한국은 물론, 미국과 일본에서도 감탄을 금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상을 떨치고 온전한 기량을 발휘한 김연아의 진면목은 세계최고의 수준이었으며 피겨와 관련된 기술과 연기력에서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최상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시즌 첫 대회이니 만큼 김연아를 비롯한 모든 선수들의 기량이 정점으로 발휘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올 12월에 한국에서 펼쳐질 그랑프리 파이널이 열릴 시점에서는 새 프로그램에 적응한 선수들의 기량이 지금보다 더욱 물이 올라있을 것입니다.

새 프로그램에 완벽하게 녹아들지 못한 첫 대회에서 193.45점을 기록한 김연아의 기량이 아직 최고조로 발휘된 것이 아니라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점을 간과할 때, 여자선수 최초의 '꿈의 200점대' 점수도 이제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새 프로그램을 처음으로 연기하면서 김연아가 다듬어야할 부분이 나타난 것도 이번 대회의 값진 결과물이었습니다. 고난도 스핀인 플라잉 싯 스핀(FSSp)과 플라잉 체인지 콤비네이션 스핀(FCoSP)을 좀 더 가다듬고 김연아가 가장 힘들어하는 점프인 '트리플 룹' 점프의 성공률을 높이는 것이 새 프로그램의 과제가 되었습니다.

만약 위에서 언급한 스핀과 룹 점프마저 갖춰진다면 200점 돌파는 시간문제이며 김연아가 갈고 닦은 최상의 연기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시즌에 접어들면서 가장 고무적으로 평가되는 부분은 김연아가 피겨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김연아는 그동안 '행복한 스케이터' 혹은 '감동을 주는 스케이터'가 되고 싶다고 일관적으로 답변해왔습니다. 이런 꿈은 본인의 노력 여부에도 달렸지만 주변 환경에 큰 영향을 받는 피겨스케이팅을 생각할 때, 김연아를 이끌어주고 완성시킨 조력자들의 공로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김연아를 성장시키고 인생의 조력자가 되어준 이들의 열정이 있었기에 오늘 날의 김연아가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피겨의 '기본기'를 온전하게 가르쳐준 국내 지도자들

국내 피겨선수들은 피겨전문링크장이 하나도 없는 환경 때문에 수시로 링크장을 이곳저곳으로 이동해 가면서 훈련할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김연아의 효과로 많은 유망주들이 피겨의 문을 노크하고 있지만 너무나 돈이 많이 들어가는 종목의 특성과 장래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비전 때문에 2년을 버티지 못하고 피겨를 포기하는 이들도 대다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렇게 척박한 환경이지만 국내의 피겨지도자들은 선수들에게 가장 중요한 '기본기'를 가르치는데 일가견이 있습니다. 김연아는 아주 정석적인 점프와 기술들을 익혔기 때문에 세밀하고 정확한 채점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시스템 아래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는 선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같은 트리플 점프라도 상체를 먼저 돌리거나 점프 도약 시, 스케이트 엣지의 방향을 바꿔서 좀 더 편안한 점프를 구사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점프들이 큰 문제로 지적받지 못했지만 정확하게 채점되는 규정이 대세를 이루면서 정석적이지 못한 점프는 감점을 낳고 있습니다.

선수들이 편한 방식으로 점프를 배울 수도 있었지만 어린 김연아를 지도했던 류종현 코치와 신혜숙 코치는 철저하게 정석에 가까운 점프를 가르쳤습니다. 쉬운 길로 가는 방법을 고집하지 않고 교과서적인 점프와 기술을 김연아에게 장착시킨 공로는 오늘날의 김연아를 완성시키는데 가장 큰 힘이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류 코치와 신 코치에게 탄탄한 기본기와 트리플 점프 5종 세트를 익힌 김연아는 김세열 코치와 지현정 코치를 만나면서 또다시 새로운 선수로 거듭납니다. 지현정 코치는 김연아를 지도할 때, "이미 기술적으로는 완성된 선수"라고 평가했습니다.

연기력과 표현력에 있어서 일가견이 있는 김세열 코치의 지도로 김연아는 자신의 장점인 완벽한 기술에 뛰어난 표현력까지 익히게 됩니다. 신혜숙, 지현정, 김세열 코치 등, 국내에서 가장 쟁쟁한 지도자들의 조련 속에 자신의 눈부신 재능을 활짝 피운 김연아는 세계 피겨를 풍미했던 왕년의 스타를 만나게 됩니다.

브라이언 오서와 데이비드 윌슨의 조화 속에 세계 최고의 스케이터로 거듭나다


브라이언 오서는 80년대 남자피겨스케이팅을 풍미한 최고의 스타였습니다. 당시 미국의 브라이언 보이타노와 함께 '배틀 오브 브라이언'이란 치열한 경쟁을 펼치기도 했던 오서는 88년 캐나다 캘거리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이후, 세계를 돌며 아이스쇼에 매진하고 있었습니다.

김연아에 대한 코치직의 문의가 오서에게 처음 들어왔을 때, 오서는 아이스쇼 투어 중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처음에는 정중하게 거절할 수밖에 없었지만 자신이 지도하게 될 제자가 김연아라는 사실에 오서도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오서는 김연아의 코치직을 수락했으며 국내 훈련보다는 전지훈련기간이 더 많은 김연아를 생각할 때, 오서는 최적의 지도자로 낙점되었습니다. 경쟁심이 강하고 열린 자세를 가진 오서 코치의 스타일은 김연아와 찰떡궁합을 이루었습니다.

이미 모든 기술에서 정점에 올라 있었던 김연아에겐 일방통행식의 강한 지도자보다 열린 자세로 선수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주고 절충하면서 창의적인 면을 살려주는 지도자가 더욱 필요했습니다.

늘 김연아와 어머니인 박미희 씨의 의견을 존중하고 수렴하는 오서 코치의 지도방식에 김연아의 기량을 무르익어갔습니다. 또한, 오서 코치에게 강한 신뢰감을 얻은 김연아는 강한 체력을 강조하는 오서의 지도방침에 적극적으로 따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김세열 코치는 캐나다 선수들을 비롯해 일본과 미국의 유명선수들의 안무를 가르치고 있었던 데이비드 윌슨에게 메일로 김연아의 안무를 담당해줄 것을 요청하게 됩니다. 표현력에 있어서 비범한 재능을 가진 김연아를 윌슨을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창의적인 면을 가장 중시한다는 윌슨은 김연아의 몸동작과 감수성, 그리고 스케이팅 기술 등을 간파하며 김연아에게 알맞은 안무를 작성하게 됩니다.

오서코치를 만나면서 김연아는 자신의 장기인 점프를 더욱 갈고 닦았으며 스핀과 스텝, 그리고 스파이럴도 몰라보게 발전했습니다. 기술적으로 완벽해져 가는 김연아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은 윌슨의 창의 넘치는 안무였습니다.

오서와 윌슨, 그리고 김연아의 조화가 정점에 이른 작품은 2007~2008 시즌 사용되었던 프리스케이팅 프로그램인 '미스 사이공'이였습니다. 이 작품은 윌슨의 천재적인 기지가 발휘된 작품이었으며 트리플 점프와 스파이럴, 스핀과 스텝 등의 기술들을 적절하게 구성시킨 오서의 역량도 빛을 발한 걸작이었습니다.

2007 세계선수권 쇼트프로그램에서 세계신기록을 수립한 '록산느의 탱고'로 김연아는 순식간에 세계 최고의 스케이터로 자신을 알렸던 김연아는 오서와 윌슨의 합작이 온전하게 이루어진 이 작품으로 피겨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게 됩니다. 또한, 2007~2008 시즌쇼트프로그램 작품인 '박쥐'를 통해서도 절정의 팀워크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피겨 팬들의 기대 속에 탄생한 2008~2009 시즌의 작품인 '죽음의 무도'와 '세헤라자데'가 이번 Skate America에서 공개됐습니다. 강렬하고 다이내믹한 쇼트프로그램인 '죽음의 무도'과 프리스케이팅 작품인 '세헤라자데'의 우아함에 국내는 물론, 세계의 외신들도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죽음의 무도가 워낙 강렬한 인상을 줘서인지 세헤라자데에 대한 상대적인 비교 평가도 나오고 있지만 두 프로그램 모두 이전 작품들보다 훨씬 복잡한 기술과 안무들로 구성된 고난도의 작품이었습니다.

좋은 작품이 나오고 그것이 실전경기를 통해 최상의 연기로 표현되려면 코치와 안무가, 그리고 선수들 간의 의견 조화가 원만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지난 시즌의 '미스 사이공'도 좋은 작품이었지만 이번 시즌에 공개된 '죽음의 무도'와 '세헤라자데'를 봤을 때, 오서와 윌슨, 그리고 김연아간의 팀워크가 얼마나 긴밀하고 유기적인지가 여실히 나타났습니다.

김연아가 진정으로 '행복한 스케이터'가 될 수 있었던 것 중 하나는 자신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준 좋은 지도자들을 만난 데에 있습니다. 김연아를 늘 괴롭힌 부상과 피겨를 할 수 있는 재정적인 여력의 부족으로 스케이트를 벗을 위기가 몇 번 있었지만 그 때마다 김연아를 올바르게 이끌어준 지도자들의 힘이 오늘날의 김연아를 완성시켰습니다.

* 김연아를 완성시킨 사람들 - '평생코치'이자 '인생의 동반자'인 어머니 박미희씨 편이 계속 이어집니다.

[사진 = 브라이언 오서 (C) 브라이언 오서 홈페이지]
엑스포츠뉴스 조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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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걸 | 2008/10/29 09:04 | 이시대의 명인 | 트랙백 | 덧글(0)